코로나19로 3년 만에 열리는 ‘기후정의행동’에 몇 주 전 참여신청을 해놓고 서울로 바람쐬러 나들이 가는 약간의 들뜸과 빚쟁이에게 약속한 날이 다가오는 심정으로 기차에 올랐다. 마침 풀무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에 와 본인도 가고 싶다하여 정의로운(?) 가족여행이 되었다.
1호차 문이 열리고 한 여성분이 달려나와 “오늘 기후행동 참가자가 맞냐”는 확인 후 작은 푯말과 함께 인증샷을 찍어 줬다. 우리 가족은 박수소리와 함께 객실로 들어섰고, 천안역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든 좌석을 채우면서 환호와 박수는 더욱 커졌다.
첫 인사와 함께 찍힌 사진을 바로 전달받아보니 열차 창문에는 ‘기후정의열차 석탄대신 태양과 바람으로’와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는 구호가 눈에 들어온다. 작은 푯말에 쓰여진 문구는 ‘지금 당장 기후 정의’. 전국 석탄발전의 50%를 차지하는 충청남도에 외쳐야 할 구호 아닌가.
객실을 채운 사람들의 대부분은 녹색연합, 환경단체, 정의당, 발전노조, 철도노조 등 단체참여였고 가족참가는 우리가 유일해 따로 인사해야하는 수모(?)를 겪었다. 용산역에 가까워질 때쯤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간사분이 푯말을 주면서 가지고 다니시다가 행사가 끝나고 종이 재활용통에 버리면 된다고 했지만 촌놈인 우리는 결국 집에까지 들고왔다. ‘기후야 그만 변해 내가 변할게’ 라는 문구가 좀 오글거렸지만 어린 친구들의 참여가 많아서 그런지 덜 쑥스러웠다.
924 기후정의선언문의 대표 문구는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기후정의를 위해 함께 행진하자’이고, 주제어로 3가지 요구사항이 있다
첫째, 화석연료와 생명파괴 체제를 종식해야 한다. 둘째, 모든 불평등을 끝내야 한다. 셋째,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는 더 커져야 한다.
무대행사가 끝나고 거리행진이 이어졌다. 시청-광화문-종각-을지로-숭례문으로 2시간여 걸으며 구호를 외치고, 노래하고 춤추며 거리를 채웠다. 풍물패가 무리 중간에 끼여 흥을 돋우니 참 좋다라고 느끼는 동시에 그들 중에 혹시 아는 사람없나 싶은 마음에 이미 눈은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라지만, 바로 10여 미터 뒤에서 열심히 놀고 있는 친구들이 지난 여름 신양으로 농활왔던 성공회대 풍물패였다. 동네 형님들이 차려준 숯불구이 환영식에서 농활대 절반이 채식을 한다며 가지와 버섯을 열심히 굽던 친구들을 보며 가졌던 어떤 신뢰가 아니었을까?
행진의 백미는 기후위기를 알리는 싸이렌소리와 함께 길바닥에 드러눕는 퍼포먼스였다. 인류멸망(die-in)을 상징하는 5분여의 침묵은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감에 50년 아니 500년쯤의 답답함이었다. 가을 하늘은 또 청명하여 더 서글펐고, 하필 누운 자리가 동아일보 사옥 옆이라 더더욱 답답했다.
까울 것이다.
행진에 참여한 학생으로 보이는 이의 푯말에 여운이 오래 남는다. ‘(차라리)절망할 바에야 정신나간 희망을 품겠다’
막차시간에 맞추느라 행사가 마무리되기 전 서둘러 빠져나와 기차역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었고 주머니 속 스마트폰은 오늘 11.5km를 걸었다고 알려준다. 가족이 둘러앉아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명이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치행위일텐데 사람들이 어렵게 모인 큰 행사(행동)는 더더욱 방향성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치권력의 교체와 상관없이 일관되게 탄소중립 일정을 명시하고 강제할 수 있는 기후위기법 제정 요구나, 덴마크의 예에서 보듯이 모든 국가정책에 기후문제 영향을 최우선 평가하는 기후위기위원회 설치 청원 등 정치적 요구도 있었으면 좋았겠다. 팽배한 위기에 대한 분노나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의문 등 다양한 의견, 구호는 물론 제일 중요한 바탕이겠다.
귀농하면서 처음 가입한 정농회 사람들을 기차에서 볼 수 없었던 게 아쉬웠다. 유기농으로 농사지으면 그래도 조금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농사만 열심히 짓는다고 지금의 위기가 나아질리 없다. 2050년을 마지노선으로 정했던 국제기구(IPCC)가 최근에 2040년으로 10년을 앞당겼다. 올해 비켜간 슈퍼태풍이 더 자주 더 많이 올 것이다. 얘기가 길어질수록 점점 굳어져가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말하기를 그만 두었다.
오늘 행사중 스크린에 잠깐 지나간 말이 생각났다. 무력감과 죄책감. 내가 지금 쏟아내는 말들은 어쩌면 애초에 혼자 행사에 가고자 했을 때부터 의도된 것이었고 이제야 드러난 것 같다. 고해성사다. 자식의 미래를 이미 갉아먹은 사회적 죄를 고하는 거다. 분명한 것은 나는 가해자이고 동조자이다. 끊임없이 반성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정말로 미안했다. 너무도 버거운 숙제다.
924기후정의행동 참가기를 써보라는 제안을 받고 너무 무거워서 못쓰겠다 해놓고도 며칠밤 심란했다. 결국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페친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한재각 소장의 글 때문이다. 탈석탄법 입법청원을 시작했는데 20일동안 1만여명이던 서명자가 924행동 이후 급격히 증가해 이틀만에 3만명을 넘어서 국회청원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실제 입법으로 가는 길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행진에 참여한 학생으로 보이는 이의 푯말에 여운이 오래 남는다. ‘(차라리)절망할 바에야 정신나간 희망을 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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